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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일 프로필 나이 키 학력 근황 결혼 이혼 부인 영화배우

마이월드 2024. 11. 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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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일은 1970년대와 80년대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배우입니다.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던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 한지일의 프로필과 데뷔 이야기, 결혼 및 이혼 이야기, 작품 활동, 수상 내역, 여담 등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지일 프로필

한지일-영화배우
한지일

  • 나이 : 만 76세 (1947년 12월 17일 출생)
  • 고향 : 황해도 연안군
  • 본명 : 한정환
  • 본관 : 청주 한씨
  • 예명 : 한소룡, 케빈 정(미국 가명)
  • 키 : 미상 (밝혀진 바 없음)
  • 학력 : 인창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사 졸업
  • 결혼 : 이혼
  • 자녀 : 장남 한원석, 차남 한원기
  • 직업 : 배우, 기업가
  • 데뷔 : 1970년 광고 모델 데뷔

 

 

 

한지일 데뷔 이야기

한지일-영화배우
한지일

한지일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홍콩에서 활동하다 한국에 돌아온 영화배우 윤일봉이 자신의 집에 살게 되면서 그를 따라 자연스레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경희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 1970년에 CF 모델을 하면서 틈날 때마다 영화배우 오디션도 보러 다녔다고 합니다.

 

한지일-영화배우
한지일 (출처 :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그러다 영화감독 신상옥에게 발탁된 한지일은 그가 설립한 안양예고에서 연기 수업을 받으며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한소룡'으로 1973년 영화 <천동>을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하였고, 같은 해 국내 첫 모터사이클 영화 <바람아 바람아> 작품 등으로 출연을 이어가며 배우로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한지일-영화배우
한지일 (출처 :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그렇게 약 15년간 한소룡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던 그는 1985년 영화 <길소뜸>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장호 감독이 무술배우도 아니면서 이름을 가지고 뭐라고 하자 지금의  '한지일'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한지일은 당대 최고 스타 배우인 김지미와 신성일의 이름 한 글자씩을 떼서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렇게 한지일이라는 이름으로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인기 배우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한지일-영화배우
한지일 (출처 :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이후 한지일은 1980년대 말부터 성인 영화 제작자로 변신을 했습니다. 진도희와 정세희 등의 에로 배우들을 발굴했고, 그가 제작한 <젖소부인 바람났네> 등이 히트를 치면서 당시 100억 원에 가까운 재산을 모았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와 비디오 산업의 불황으로 재산을 전부 날리고 파산 위기에 몰렸다고 합니다. 이후 영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케빈 정'이라는 이름으로 재기를 꿈꿨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기도 했다고 근황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2017년 1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한지일은 웨이터와 발레파킹 요원 등을 하며 일하다가 26년 만인 2019년 단편 영화 <미희>를 통해 영화배우로서 스크린으로 복귀한 바 있습니다.

 

 

 

 

한지일 결혼 및 이혼 이야기

한지일-가족
한지일 가족 (출처 :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한지일은 한 번의 결혼과 이혼을 한 아픔이 있습니다. 그는 대한항공 승무원 출신이었던 4살 연하의 전 부인 조모 씨와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그의 전 아내는 승무원 재직 시절 '스마일 퀸'으로 선정되었을 만큼 예쁜 외모와 착한 마음을 지녔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은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등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냈다고 합니다.

 

한지일-이혼
한지일 이혼 (출처 :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아내 명의로 된 영화 제작 사업이 타격을 입으며 전 아내와도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이혼 후 그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배달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2000년에 아내를 처음 만나려고 아내가 운영하던 영화 회사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당시 전 아내 회사의 영화 스텝들이 시나리오를 들고 있고 배우들도 와서 계약하는 날이었는데, 이를 본 순간 화가 나서 이성을 잃게 되며 방화를 저질렀다고 하는데요. 크게 불이 나지는 않았고,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로 인해 한지일은 감옥을 다녀온 바 있다고 합니다.

 

한지일-이혼
한지일 (출처 :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참고로, 한지일의 큰 아들 한원석은 혼혈가수 매니악과 이미쉘이 소속된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 중이고, 둘째 아들 한원기는 미국에서 공부한 후 영어학원 강사로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한지일 작품 활동

한지일-영화배우
한지일 (출처 : MBN 특종세상)

  • 1973년 영화 <천동> 암행어사 역 (데뷔작)
  • 1973년 영화 <바람아 구름아>
  • 1976년 영화 <캘리포니아 90006>
  • 1977년 영화 <뉴욕 44번지>
  • 1978년 영화 <돌아와요 부산항>
  • 1978년 영화 <코메리칸의 낮과 밤>
  • 1979년 영화 <경찰관>
  • 1979년 영화 <물도리동>
  • 1979년 영화 <용문호객>
  • 1980년 영화 <화요일 밤의 여자>
  • 1980년 영화 <최후의 증인>
  • 1980년 영화 <돌아와요 부산항 '80>
  • 1980년 영화 <오사카의 외로운 별>
  • 1981년 영화 <도시로 간 처녀>
  • 1983년 KBS 드라마 <보통 사람들>
  • 1983년 영화 <이상한 관계>
  • 1983년 영화 <나비 품에서 울었다>
  • 1984년 영화 <나도 몰래 어느새>
  • 1985년 영화 <길소뜸>
  • 1987년 영화 <아다다>
  • 1987년 영화 <덫>
  • 1988년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
  • 1988년 KBS 드라마 <형사 25시>
  • 1988년 영화 <성야>
  • 1989년 영화 <불의 나라>
  • 1989년 영화 <추억의 이름으로>
  • 1990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 대원군>
  • 1991년 영화 <밤으로의 긴 여로>
  • 1992년 영화 <모두가 죽이고 싶언 여자>
  • 1993년 영화 <가위 여자>
  • 1994년 영화 <칠삭동이의 설중매>
  • 1996년 SBS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펀치펀치> '정경부인 바람날까'
  • 2001년 SBS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
  • 2019년 단편 영화 <미희> 진덕 역

 

 

 

한지일 수상 내역

한지일-영화배우
한지일

  • 1978년 제17회 대종상 '신인남우상'
  • 1989년 제27회 대종상 '남우조연상'
  • 2019년 제57회 영화의 날 '봉사상'

 

 

 

한지일 TMI 및 여담

한지일-영화배우
한지일

  • 한지일은 배우로 데뷔한 이후 수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하게 봉사와 기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한지일은 우울증을 앓게 되면서 무언가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 콧수염을 기른 적이 있습니다.
  • 한지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홍업과의 친분으로 인해 과거 정부로부터 정치 탄압을 받으며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는 대학교 때 김홍업과 친한 친구 사이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에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 한지일은 삼미그룹 부회장이었던 고 서상록이 롤 모델이라고 합니다. 롯데호텔에서 웨이터 일을 했던 서상록에 감명받아 자신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복귀했을 때 웨이터 일을 했다고 합니다.
  • 한지일은 1970년대 신인 배우들과 함께 안양예술고등학교에 가서 연기 수업을 받았고, 당시 로비스트로 알려진 린다 김과 함께 공부했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배우 한지일의 프로필과 데뷔 이야기, 결혼 및 이혼 이야기, 작품 활동, 수상 내역, 여담 등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과거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기 배우로서 재도약을 꿈꾸며 다방면에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배우 한지일의 앞으로의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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